나홀로 한라산 등반! ^-^

사생활 /   2006. 10. 1. 17:04


도보 여행 중에 마음에 꼭 드는 나의 풍경을 찾았다. 흑산도에서 만났던 '산과 어우러진 파란 하늘'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난주동안에는 사무실 밖에 나와 앉아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며 있곤 했었다. 회사가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어 자리에서 일어나 나서기만 하면 산과 어우러진 하늘을 볼 수 있다.



그러다 문득, 가을 한라산을 오르고 싶었다. 단풍이 들기전 녹음이 짙은 그런 초록산을 보고 싶었다. 날씨가 쌀쌀해 지고 있으니 서둘러야 했다. 마음먹은김에 당장 나서기로 했다. 풍광이 좋은 영실 코스로 가 보자! 이번에도 혼자다.


"머? 한라산? 미쳔? 죽잰?" (뭐라고? 한라산? 미쳤니? 죽으려고?)
"갑자기 무사? 왜 하필 한라산?" (갑자기 왜 그래? 왜 하필이면 한라산이야?)
"차도 없이 어떻게 가겠다는거냐? 버스 타고 가면 한참 걸어가야 하는데..."
"영실로 가면 혼자 걸어가기 무서운데.. 가 지크냐?" (갈 수 있겠니?)
"왜 혼자야?? 같이가주까??"
"한라산이라니~ 완전부러움! 만나면 꼭 안아줘야지!"
"하하 화이팅! 산은 높은 것이 아니라 깊은 것. 정복하려 하지 말고 순응해"
"조심히 다녀오십쇼"
"으이구~ 조심히 댕겨와"
"내가 못 오른 산이 한라산인데, 언제 한번 같이 오르세"
많은 사람들의 염려와 격려까지 마음에 챙겨놓고 출발했다. 잘 해 낼수 있으리라 스스로를 다독이며.


영실까지 가는 버스시간을 어설프게 알고 있어서, 집에서는 버스시간보다 좀 이른 시간에 출발했다. 정거장까지 20분 남짓 걸었다. 도착해 보니, 시간은 늦지 않았는데 버스가 지나버린건 아닌지 괜히 걱정이 됐다. 혼자 가는 길이라 이래저래 잔걱정이 많은 거다. 혹여 지나가는 버스를 놓쳐버릴까 신경이 곤두 서 있는데, 외국인이 말을 건다. 중문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싶단다. "여기서 버스를 탈 수 있습니다. 버스는 곧 올껍니다. 5분이내에. 버스를 타고 '중문'이라고 얘기하세요. 9시쯤에 도착하실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뭐라고 알아 들었을런지는 나도 모를 일이다. 안 되는 영어 하느라 마음이 분주한데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1100도로를 타고 가는데, 하늘이 반쪽이 흐리다. 산으로 올라갈수록 날씨는 맑아졌다. 다행이다.



영실코스는 버스 정거장에서 내리고 나서 등산로 입구까지 약 2km 아스팔트 길을 걸어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은 승용차를 타고 와서 영실 등산로 입구까지 그대로 차를 타고 올라간다. 버스를 타고 와서 영실코스를 오르는 사람은 나 혼자다. 다행히 도로 우측으로 나무길이 놓여있다. 걷기에도 충분히 좋다.



출발한지 5분도 되지 않아 숲속에서 노루가 보여 버렸다. 눈이 휘뜽그래지면서 얼른 카메라를 꺼내 들었는데, 녀석은 이미 고개를 돌리고 먼길을 가고 있었다. 흥분해서 찍니라고 사진이 흔들리고 난리도 아니다.



"탑써. 위에꼬지 태와다 드리쿠다." "위에까지 같이 타고 가실래요?" "여기꼬지 걸어와수광? 혼저탑서." "걸엉가당 지쳥 산에 못 오릅니다예~" 지나가던 차들이 세워서 같이 타고 가자고 했지만 나는 천천히 파란 하늘도, 산도, 바람도, 노루도, 나무도  충분히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괜찮습니다. 걸어서 천천히 올라갈께요. 감사합니다." 라고 고개까지 숙이며 인사를 하고는 다시 혼자 걸어 올라갔다.



이름 모를 풀과 나무들에게 미안해 하며, 그들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음을 가슴 깊이 반성하며 그렇게 걸었다.



30분쯤 걷고 나니 힘이 들었다. 그런데 앉아서 쉬고 있으면 또 다시 지나가던 차들이 세워서 같이 타고 가자고 할까봐 앉아서 쉬지도 못했다. 혼자 걷고 있어도 태워 주겠다고 하는데 앉아서 쉬고 있으면 지나가는 모든 차들이 세울것 같았다;;; 아무도 신경쓰지 말고, 혼자 하고자 하는대로 하고 싶어서 혼자 왔는데... 이렇게 또 누군가에게 자꾸만 신경이 가고 있다.



40분쯤 걷고 나니 먼저 올라간 사람들의 차들이 줄지어 서 있는 주차장이 보이고, 오늘 올라야 할 한라산도 드디어 보인다. 영실등산로 입구다. 화장실에 다녀오고, 콩닥콩닥 뛰는 가슴 진정시키고, 물 한모금 마시고, 어설픈 스트래칭으로 본격적으로 산에 오를 준비를 한다.



영실등산로 입구에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 한 그루가 있다. 깜짝 놀랬다. 내가 보고 싶었던 푸른 산을 볼 수 없을까 봐서. 다섯발자국쯤 뒤로 물러서서 다시 멀리 한라산을 다시 쳐다봤다. 아직 파랗다. 다행이다.



오늘 걸어야 할 곳은 영실 - (3.7km) - 윗세오름 - (4.7km) - 어리목 총 8.4km다. 힘내자!



영실코스는 해발 1280m 부터 시작된다. 몰랐던 사실이다. ;;;



자꾸만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본다. 내가 산을 쉬이 오르지 못하는 이유중 하나는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행여나 있는 힘껏 올라가다 지쳐버려 다시 내려올 힘 없이 주저앉게 될까봐서... 그래서 내가 견딜수 있을 거리만큼만 걸어 올라가야 했다.
아직은 나무가 산보다 크고 높다. 얼마 걷지 않았다. 조금 더 걸어보자!



영실코스는 길이가 가장 짧은 대신 경사가 많이 가파르다. 걸음 걸음에 힘이 들어가야 오를 수 있다. 숨도 가쁘다.



혼자 산을 오르면 아무데나 앉아서 쉴 수 있어서 좋다. 눈치 볼 일도 없고, 아무도 기다리는 사람이 없기에 오버해서 빠르게 걸을 필요도 없다. 내 페이스대로 천천히 걷고, 계단을 오르다가도 평평한 돌덩이 하나만 있으면 엉덩이를 붙이고 쉬면 된다.
돌계단에 앉아 먼 산을 보며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데, 옆을 지나가는 아주머니 말씀하시기를 "아이고, 제패(?) 열매 열었쪄~". 나는 못 봤는데... 아주머니께서 지나가고 나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봤다. 나무숲 사이로 익숙한 잎사귀가 눈에 띄었다. 제패(- 대략 이렇게 발음 되는데 어떻게 쓰는지는 모르겠다)나무 였다. 열매는 처음 본다.



기암절벽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나가던 아저씨는 "저 사이로 물이 흐르면 얼머나 멋지겠냐"라고 하신다. 근데, 실제로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물이 흐르기도 하는것으로 알고 있다.



이 쯤에서 핸드폰으로 풍경을 찍어 친구에게 보냈다. 이제 목적지가 보인다고. 거의 다 왔노라고, 멀지 않았노라고... 그런데, 그 메세지를 보내고 돌아서는 순간 표지판이 보여버렸다. 1.5km 온 지점이었다. 반도 안 온 것이었는데... 참으로 민망한일이로소이다. ㅋㅋㅋ



날씨가 한쪽 흐림 날씨인지라 오르는 길의 왼쪽에는 파란하늘, 오른쪽으로는 뿌연 하늘이 펼쳐졌다. 왼쪽으로 보면 맑은 날씨를 볼 수 있는데,, 사람들은 자꾸만 오른쪽을 보면서 오늘 날씨가 안 좋다고 한말씀씩 하신다. 반대편은 돌아봐 주지도 않으신다. 파란하늘이 섭해할텐데... 날씨가 좋았다면 더 멋진 기암을 더 오랜시간 보고, 더 멀리있는 섬까지 볼 수 있었겠지만, 나는 산속에서 파란 하늘을 보았으니 일단 만족이다!



돌계단을 오르고 나면 낮은 나무들이 자리하고 있는 숲이 나온다. 그래도 나름 숲인지라, 여기서부터는 조금씩 찬 기운이 돌기 시작한다. 남방을 꺼내 입었다. 가운데 큰 돌들이 놓여 있어 발을 잘못 디딛으면 발목을 삘 수 있다. 조심해야 한다. 업어줄 사람도 없으니... ;;;



숲을 지나고 나면 정말 탁 트인 길이다. 하늘로,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발걸음이 갑자기 가뿐해 진다. 사람들도 모두 같이 신이 났다.
여기서부터 정상까지는 내가 좋아하는 풍경이 펼쳐졌다. 푸른 잎들은 아니었지만 나름 싱싱한 나뭇잎들이었고, 하늘도 충분히 맑아주었다.







와우~ 노루샘에 도착하기 전이다. 입구에서 보았던 노루가 벌써 도착해 풀을 뜯고 있었다. 안녕. 또 보네. 나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나 좀 아는척 해주지... 평소에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라 해도 산에서 우연히 마주칠때는 큰 떨림을 준다. 지리산에서 다람쥐를 만나고 크게 호들깝을 떨었던 것처럼...



윗세오름 도착! 까마귀 천지다. 사람들이 앉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자리에도 군데군데 새똥이 묻어 있다. 하늘을 나는 새가 휘날린 똥이 나의 김밥에 적중하지 않길 바라며, 김밥을 하나씩 꺼내 먹었다. 윗세오름 등반의 로망~ 육개장 사발면과 함께.

언니가 싸준 김밥 사진을 찍지 못했다. 홀로 등반을 응원하며 새벽부터 일어나 똘똘 김밥을 말아 줬는데... 사진을 넣고 고맙다 인사하고 싶었는데...  많이 배고팠나 보다. 다 먹고 나니 김밥 사진이 없다... 사진없이 마음으로만 언니에게 쌩유~ ^^

한라산을 오른 사람들이 많다.
윗세오름에 들어서기 직전에 회사분들을 만났다. 사실, 같이 한라산 등반을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혼자 오고 싶어서 따로 얘기 하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딱! 만나버렸다. ;;; 역시 제주는 좁다. ㅋㅋㅋ
50대쯤 되어 보이는 아줌마, 아저씨 60분 정도가 빙~ 둘러앉아 점심을 드신다. 위하여~ 위하여~를 연발하며 거나하게 한잔씩 드신다. 단체로 온 외국인 20명 정도는 이런 풍광이 신기해서 쳐다보고, 아주머니들은 외국인들이 신기해서 쳐다보고... 둘은 서로 마주보며 한 공간에 있었다.
어린 꼬마를 데리고 젊은 아빠가 등산했다. 아빠는 맥주 세캔을 드셨고, (내가 본 게 세 캔이니 더 많이 드셨을지도;;;) 어린 꼬마는 음료수를 마셨다. 그리고 나보다 조금 일찍 윗세오름을 출발 해 어리목을 향해 내려갔다. 그런데, 내가 만세동산쯤에 도착했을때, 아버지는 길 위에 누워 잠들어 계셨고, 꼬마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며 길 위에 앉아 있었다. 그 꼬마와 한참을 앉아 놀다 먼저 내려왔는데,,, 한라산에서 내려왔을라나 모르겠다. ;;;



나도 이제 슬슬 내려 가야지... 자, 이제 어리목을 향하여 출발!



어리목으로 내려가는 길은 돌계단과 나무 계단으로 되어 있다. 계단이라 하기에는 좀 널찍하게 층이 나 있다. 한 계단에 세 걸음씩 걸으면 딱 좋다.



나무 계단을 지나고 나면 이번엔 돌길이다. 등산화를 챙겨신지 않아서 내 발바닥이 무차별 공격을 받고 있다. 비교적 평평한 돌을 골라 발을 딛었다. 한걸음 한걸음이 재밌어졌다.



'어? 어리목으로 내려오면 이 쯤에서 진달래 밭이 보여야 하는데?' 생각하며 고개를 들어보니 양 옆으로 억새밭이 펼쳐져 있었다. 이미 많은 길을 지나와 버린지라 소심하게 모여 있는 억새만 찍혔다. 내년 가을에는 억새를 만나러 다시한번 와 줘야겠다. 기다려!



싱싱한 바람이 나의 얼굴을 지나갔다.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바람소리에 몸을 실어 훨훨 날다 알맞은 자리에 스르르 내려 앉았다. 발소리를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온 신경을 집중해야 들을 수 있을만큼 작은 소리였다. 감동적이였다.



어리목 코스는 끊임없는 숲길이었다. 모자를 쓰지 않아도 얼굴이 타지 않을만큼 울창한 숲이었다. 영실코스만큼 볼거리가 많지는 않았지만, 또 다른 느낌의 또 다른 색깔의 한라산을 만날 수 있다.



도착하니 관리소 아저씨가 "수고하셨습니다." 라고 인사해 주셨다. 산속에서 내내 혼자 지내다 왔기에 다른 사람이 건넨 한마디가 너무도 반가웠다. "감사합니다!!!"라고 크게 인사하고, 다시 씩씩하게 걸어서 버스로!!!



어리목 입구에서 정류장까지는 7분정도 걷는다. 버스 시간이 아직 한참 남아 있어서 두루두루 돌아 보며 걸었다. 하늘도 인사하고, 억새도 인사하고, 나무도 인사하고, 멀리 어승생악 오름도 인사하고, 내가 오늘 올랐던 한라산도 인사하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인사하고, 좋았다.


한라산에서 하루종일 산셈이다. 보통 사람들 오전이면 다녀오는 산을 나는 두배의 시간을 들여 돌아본 것이다. 그만큼 가슴에 담긴 것들도 많을지니. 뿌듯한 토요일이 되었다.



(07:35) 집에서 출발 - (07:57) 한라의료원 정거장 도착 - (08:16) 1100도로 버스 승차, 3500원 - (08:52) 영실 정거장 도착 - (09:35) 영실 등산로 입구 도착 - (09:45) 영실 등반 시작 - (11:47) 윗세오름 도착 - (12:35) 윗세오름 출발 - (14:06) 어리목 도착 - (14:30) 어리목 정거장 도착 - 지나가던 아저씨 차 태워주셔서 집으로! ^^


@ 뎀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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