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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스무살
희정, 자람, 소마, 서래, 항아, 노을, 미영 지음
이프출판사 펴냄
p295


마흔살 쯔음의 일곱 언니들의 자기 찾기 이야기. 그들의 이야기는 격정적으로 끓어 오르다 스스로 진정 되고 평안해지기를 반복했다. 아무도 그들을 보듬어주지 않았고 스스로 우뚝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힘을 찾았다. 참 다행이다.
담담하게 펼쳐지는 너무도 진솔한 이야기에 잠시 당황해서 잘 안 읽히기도 하지만, 눈물콧물로 범벅되어 주먹 불끈쥐고 가슴으로 읽다보면 그만큼 절실했던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작년 3월쯤으로 기억한다. 스무명 남짓 한 사람들의 모임이었고, 작은 펜션에서 밤을 보냈다. 그날 밤, 한 언니와 두런두런 밤새 이야기를 했다.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가슴 울리는 큰 이야기들이었다. 언니는 이야기를 했고, 나는 들었다. 한번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을 겪고난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무런 대꾸를 할 수 없었다. 나는 그런 일들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에... 그저 눈을 꿈뻑 꿈뻑 하며 귀를 열어 언니의 마음을, 과거를 받아들였다. 언니는 주기적으로 "자니?"라는 말을 반복하며 이야기를 내려놓았다. 그 후 언니를 더 잘 알게 되었고 우리는 만나면 안아주는 사이가 되었다. 그 날의 이야기들이 '글'이라는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이 되어 나오니 몇번을 반복해 읽었다.

아팠다. 그리고 스물 아홉의 미혼의 아가씨가 읽기에는 무섭기까지 했다. 글 속의 이야기가 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쩌면 대한민국의 모든 언니들이 겪고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가슴 답답답답답해졌다. 그래도 나는 아직 열렬한 사랑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적당한 시기에 맘맞는 좋은 사람을 만나 오손도손 재밌는 가정을 꾸리고 싶은 욕망도 있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내가 최고로 믿고 따른 결정들이 때론 잘못 될 수 있음을 쎄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도 희망은 있음을 알게 해 주었다.

마흔살 쯔음의 여성을 부를때 '아줌마'라는 호칭 보다는 '언니'가 더 자연스럽고 어울릴만큼 나도 나이를 먹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내 욕심을 양보 할 줄 모르고, 칭얼거림 비슷한 목소리로 끊임없이 요구사항을 발설해 내는 습관도 여전하고, 좋고 싫음이 확실해 되돌아봄의 여지 없이 사람들의 관계를 정리 해 가는 대인관계 패턴도 갖고 있다. 십년쯤 후에 누군가에 의해서 혹은 나 스스로에게 상처받기 딱 좋다. 나도 그 나이 쯔음에는 어떠한 모습으로 세상과 화해하고 있을지, 조용히 가만히 되짚어보게 되었다.

사십대
고정희

사십대 문턱에 들어서면
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기다릴 인연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아니, 와 있는 인연들을 조심스레 접어두고
보속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

씨 뿌리는 이십대도
가꾸는 삼십대도 아주 빠르게 흘러
거두는 사십대 이랑에 들어서면
가야 할 길이 멀지 않다는 것도 안다.
선택할 끈이 길지 않다는 것도 안다.
방황하던 시절이나
지루하던 고삐도 눈물겹게 그러안고
인생의 지도를 마감해야 한다.

쭉정이든 알곡이든
제 몸에서 스스로 추수하는 사십대
사십대 들녘에 들어서면
땅바닥에 침을 퉤 뱉아도
그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안다.
다시는 매달리지 않는 날이 와도
그것이 슬픔이라는 것을 안다. (0)

나의 '판의 미로' - 희정

내가 둘이 되어 나를 안아주고 싶다. (43)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제 ‘판의 미로’에서 ‘판’은 내 자신이다. 내가 규칙을 만든다. 그리고 그 규칙은 영화 ‘판의 미로’에서와 같이 적에게 맞서기 (용기), 욕망 무조건 억누르기 (인내), 사랑하는 사람 희생의 제물로 바치기 (희생) 등과 같이 폭력적인 것이 아니다. 용기를 만들기 전에 적을 만들지 않기, 욕망을 억누르기보다 욕망과 도덕의 경계를 허물기, 그리고 사랑이란 이름으로 희생되지 않기, 또한 사랑이란 이름으로 누구도 희생 시키지 않기 등과 같은 규칙들을 하나씩 만들어 가고 있다. (47)

나의 이니시에이션 - 자람

쉴 새 없이 울음이 터져 나왔다. 지는 해를 보고도 울었고 뜨는 해를 보고도 울었다. 낯선 이의 작은 친절에도 눈물이 나왔고 커피를 마시면서도 울었다. 몸이 아프면 입원을 하여 나을 때까지 치료를 한다. 나는 영혼의 치료가 필요하고 관심과 사랑과 위안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믿어야 했다. 쫓기듯이 살지 않기로 결심하고 팽팽하게 쥐고 있던 긴장의 끈을 놓아버리자 웃을 수 있었다. 몇 년 동안 웃으려고 하면 얼굴 근육이 아파서 웃지를 못했었다. 이제 몇 년 동안 듣지 못했던 음악을 들을 수 있었고 책을 읽을 수 있었다. (86)

내 안의 나는 도약을 원했다. 갇혀 있던 나는 짐승처럼 울부짖곤 했다. 무엇이 나를 울부짖게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괴로워했다. 여자들이 가는 길을 따라 걸어왔으나 조금 더 현명하게 걸어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90)

내가 제일 예쁠 때 - 소마

나는 외로웠고 우울했다. 밤늦게 귀가하다 골목길 모퉁이에 놓인 공중전화기를 보면 눈물이 났다. 전화를 걸어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었고, 소통이 가능한 그 사람에 의해 삶이 조금이라도 바뀌기를 나는 꿈꾸었다. (108)

나는 내 생애 단 한번 있을까 말까한 용기를 내어 폴짝 뛰어 징검다리에 발을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알았다. 그것이 그렇게 대단한 용기가 필요할 만큼 겁나고 무서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저 조금만 가벼워지면 될 일이라는 것을, (123)

‘어린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가 쓴 자전적 소설 ‘야간비행’을 다시 한번 읽었다. 책 표지에 쓰여 있는, ‘인간은 사랑하는 마음을 숨기듯이 용기도 어둠 속에 꼭꼭 감추어둔다.’ 는 구절이 나를 사로잡은 게 그 이유였다. 나는 그 문장을 곱씹으며 작가가 우리에게 어서 용기와 사랑을 꺼내 놓으라고 격려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처음 징검다리에 발을 올려놓을 때의 그 용기를 기억한다면 내 생의 후반부도 두려움 없이 멋지게 살아낼 수 있을 거라고, 길 위를 떠돌아다니며 배운 가볍게 사는 법을 놓치지 않는다면 집착과 혐오 없이 나 자신, 그리고 이 세상과 더 따뜻하게 사랑할 수도 있을 거라고 말이다. (132)


이제, 나는, 내가 필요하다 - 서래

나름 괜찮다고 생각한 내가 남들에 비해 참으로 보잘 것 없어 보여서 열등감과 비하감 속에서 우울해 하고 있었던 것이다. (163)

작고 단순한 영혼의 방을 드디어 얻었다.
마음대로 잠들고 마음대로 굶을 수 있는,
그리고 혼자일 수 있는 작은 지성소.
생각보다 적응이 잘 되지 않아 우왕좌왕하고 갈팡질팡 하지만
곧 방의 크기에 맞는 작고 따스하고 다정한
몸과 마음이 될 거라 믿는다. (183)


내 가슴에 청진기를 대보다 - 항아

이제 불혹에 다다른 나의 영혼에 청진기를 대 본다. 그토록 원하던 마음의 평화는 얻었나, 애정결핍증은 좀 나아졌나, 혼자서도 불을 모두 끄고 잘 수 있는가, 공연한 공포심으로 시달렸던 마음이 잦아져 이제 좀 세상이 덜 무서운가, 적극적인 성향에서 오는 도전적이고 공격적이기까지 한 대인 관계 패턴은 부드럽고 여유있는 태도로 바뀌었는가, 무엇보다 아직도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186)

나는 더 이상 나를 가슴 떨리게 하는 일이 아니라면 어거지로 하지 않으리라 작정했다. 힘들다 해도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 해도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거창한 일이지만 인류를 위해 유익한 일을 하자. 이것이 내가 새로 정한 나의 길이었다. (213)


눈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라 - 노을

지혜로운 이의 삶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
무엇을 들었다고
쉽게 행동하지 말고
그것이 사실인지 깊이 생각하여
이치가 명확할 때 과감히 행동하라
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임금님처럼 말하며
눈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라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
역경을 참아 이겨내고
형편이 잘 풀릴 때를 조심하라
재물을 오물처럼 볼 줄도 알고
터지는 분노를 잘 다스려라
때로는 마음껏 풍류를 즐기며
사슴처럼 두려워할 줄 알고
호랑이처럼 무섭고 사나워라
이것이 지혜로운 이의 삶이니라
달마산 미황사 금강합장 (221)


많이 걸었다. 바람 속에서, 강렬한 햇빛 속에서, 세상 아래 새로울 것도 어려울 것도 없는 것 같다. 또 변화하지 않는 것도 없고 변화하는 것도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발을 멈춘 곳은 서해 노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고즈넉한 산사, 세상에 꺽이지 않겠다는, 무엇과도 바꾸지 않겠다는 나름 치기어린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있던 나는 그 산사에서 불어 내려오는 바람에 몸을 실어 가볍게 날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54)

정말 사람은 자기가 꿈꾸는 욕망을 향해 비상하는 본능을 가졌다고. (258)


Happy Rebirth to Me - 미영

싸움을 제대로 할 줄 알면 화해하고 용서할 줄도 알련만 (274)

아이들이 태어나 불러준 엄마라는 이름은 나를 깨어나게 했다. (274)

지난 시간을 뒤돌아 보면서 울퉁불퉁하고 뒤틀린 나를 기억이 이끄는 대로 들여다보며 가까이에서 안아주곤 했다. (276)

지금까지의 삶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자각은 커다란 변화였다. (277)

처음으로 돌아가서 내 어머니의 자궁에서 산도를 따라 머리를 내밀고 쑤욱 빠져 나와 우렁찬 울음소리로 이 세상에 인사를 한다. 내게 답을 건네주는 두 딸과 함께 나는 이제 다시 태어났다. (294)





 

@ 뎀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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