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살

사생활 /   2007. 12. 27. 23:48


나는 이 세상에 빚과 의무를 지고 있다.
나는 30년간이나 이 땅위를 걸어오지 않았나!
여기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그림의 형식을 빌어 어떤 기억을 남기고 싶다.
-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빈센트 반 고흐, 예담)


스무 살엔, 서른 살이 넘으면 모든 게 명확하고 분명해질 줄 알았었다. 그러나 그 반대다. 오히려 '인생이란 이런거지'라고 확고하게 단정해 왔던 부분들이 맥없이 흔들리는 느낌에 곤혹스레 맞닥뜨리곤 한다. 내부의 흔들림을 필사적으로 감추기 위하여 사람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일부러 더 고집 센 척하고 더 큰 목소리로 우겨대는 지도 모를 일이다.
- 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문학과지성사)


이십대의 나의 꿈은 고흐처럼 스스로를 밀어붙인 후 빠르게 소진하여 죽음을 맞이하고 싶었습니다. 서른이 넘어 이미 요절의 가능성을 놓쳐버리고 난 나는 아흔까지 살며 생의 마지막까지 왕성한 창조력으로 세상을 질주했던 피카소의 신선함과 장난스러움, 내면의 다양한 국면의 인식과 통합의 능력에 점수를 줍니다.
- 내 입에 들어온 설탕 같은 키스들 (김선우)


서른다섯. 이젠 슬픔도 아주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가령, 밤 열 시의 수퍼마켓에서 라면 한 봉지와 소주 한 병을 살 때, 오백 원짜리 동전 두 개와 백원 짜리 동전 다섯 개, 오십원짜리 동전 두개를 내고 사십원을 거슬러 받을 때, 검은 비닐 봉지를 들고 주머니에 거스름돈을 찔러 넣을 때, 마흔을 바라보는 여자 선배가 올해는 꼭 시집갈 거야, 하며 말할 때, 그 선배가 탱고를 배우러 다니는데 함께 레슨을 받는 젊은 애들의 동작은 따라 할 숭 있어도 예쁜 표정은 절대로 따라할 수 없다며 푸념할 때, 슬픔은 너무나도 구체적이다. 그 선배가 그래도 넌 시집도 냈고 아내도 있고 아이도 있다고 위로했는데, 그건 이미 다 지나간 일이야, 라는 말이 내 입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 나올 때. 서른다섯. 슬픔의 무게도 잴 수 있을것 같은 나이.
-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 (최갑수)


나이가 든다는 것은 천천히 삶의 두루마리를 펼치는 것이다. 두루마리의 앞 부분, 즉 젊은 시절의 그림이 더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그것이 싱싱하고 발랄하고 모험적인 것이라면, 나이가 들면서 짜 놓은 인생의 직물은 은은하고 통찰력에 차 있고 완숙한 것이어야 한다. - 나, 구본형의 변화 이야기 (구본형, 휴머니스트)


서른 살이 되는 아침의 심정은 착잡하다. 그렇게 빨리 지나가버리기를 바랐던 10대, 20대 들에게 좋은 나이라고 진정 선망을 담아 말하는 자신에 문득 놀라며 조금쯤 우울해지기도 한다. 앞으로의 10년이 자신의 인생 방향을 결정 지을 것이라는 초조감 앞에 30대는 점령해야 할 고지처럼 버티고 있다. 때문에 전투하듯이 생활 속으로 돌진해 들어가게 된다. 30대는 바쁘고 바쁘다는 것으로 충분히 풍요로운 나이이다. 생활의 안정을 바라고 물질의 위력을 알기에 그것에 대한 욕망이 생기며 20대에 지녔던 외골수의 집념은 소시민의 꿈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면서 가끔 혼자 있는 시간에는 본래 자기의 꿈과 얼마나 멀어졌는가, 쓸쓸하고 참담해지기도 한다. 30대는 가능성과 체념의 틈바구니에서 안간힘을 쓰면서도 현실을 수긍하고 받아들이며 새로운 그러나 희망없는 로맨스를 막연히 꿈꾸기도 한다. 뻔뻔함과 교활함을 습관처럼 익히며 그렇게 자신 있게 경멸하던 ‘속물스러움’은 ‘생활’이라는 이름으로, 절대 가치는 상대가치로 변모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30대란 감상도 치기도 벗어버린 건강한 생활인으로서의 꿈을 갖는 나이이다. 나이에 대한 책임과 자각이 생기고 ‘나’는 ‘우리’의 관계로 연계되며 다만 살고 있을 뿐이 아닌, 충분히 생활하기를 원하게 된다. 특히나 여성들은 무엇을 새로 시작하기에도 포기하기에도 적당치 않은 나이에 대한 갈등이 깊어지면서 한편으로는 새로운 금을 긋고 출발하기 보다는 주어진 조건하에서 힘껏 살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다. 현재의 삶이 타협이나 도피가 아니라 당당한 선택임을 스스로에게 주지시킬 필요가 있기에 가족에 대한 희생과 헌신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름은 어머니며 아내로서의 역할 뒤로 지워지지만 그러면서도 한 겹 벗기면 드러나는 무늬 – 아무개의 아내이며 엄마이고 며느리라는, 거부할 수 없고 부정할 수 없는 관계망 속에서의 내가 아닌, 단지 성장하려는 한 소녀의 역할만이 주어졌던, 그래서 한 자락 바람과 한 송이 꽃의 피어남에도 그리움과 예감, 기다림에 한없이 자신을 내맡길 수 있는 자유와 고독과 치기를 향유하던 때, 오직 ‘나’이기만 하면 되던 시절 – 가 선명하다.
흔히 높은 산 정상에 올라 있음으로 표현하기도 하는 30대의 끝머리, 때로 감지되는 희미한 조락의 그림자에, 모험과 도전과 일탈이 허용되지 않는 정해진 길을 충실히 가야 하는 자의 쓸쓸함과 아쉬움이 없을 것인가.
- 내 마음의 무늬 (오정희)



자꾸 이런 글들에 눈과맘이 간다.
내가 정말 서른이 되어가나 보다.

지나고보면 아무것도 아니라할지라도.
지금 내겐 너무도 커다란 그 무엇이다.


D-day 4 서른살


@ 뎀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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