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 기쁨의 기억
강영희 지음
일빛 펴냄
15,000원 | 287쪽
'한국적인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수없이 들으면서도 그 근거를 명확히 제시해 내지 못했던 나에게 우리의 문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한국인으로써의 기억을 되살리게 해 주는 책이었다.
문화란 이데올로기적 접근이 아닌 취향으로 접근을 해야 한다는 말에는 263% 공감! 하지만, 전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좀 아리송 하다.



나는 어느만큼이나 한국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겸재의 진경산수화를 보면서, 나와 같은 취향의 사람이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을까?
한국의 소색을 보면서 거기에서 묻어나는 무미건조함 보다는 한국인의 섬세함을 읽어낼 수 있을까?

나는 지금까지는 다른 사람에 의해 읽어진 문화 코드를 그대로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그게 내것인지 남의 것인지도 모른채.
우리의 시선으로 읽힌 것인지. 타인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읽힌것인지. 구분도 하지 못했다.
내 것 속에서의 푸근함과 자랑스러움을 못 느꼈고,
다른 시각속에서의 이데올로기에 휩싸인 삐딱한 시선도 그대로 받아 들였다.

내것과 남의것을 회통하여 새로운 창조적 모순을 이루어 내는것은
내것과 남의 것을 구분하고,
내것을 나의 시선으로 올바르게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온갖 것을 취향대로 골라먹는 뷔페 음식에도 반드시 김치가 갖춰져야 하고,
피자와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된장찌개를 그리워 하는 것은.
내 속에 있는 오래된 내가 전해주는 기억속의 심상이다.
내가 한국인으로써 가지고 있는 하나의 취향이다.




* 시작하기 전에
- 지은이의글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금빛 기쁨의 기억들을 다시 지펴내며 함께 깨어 있자고 말하고 싶다. (7)

* 기억 상실과 어제의 한국인
- 백남준과 서울의 기억
겸재는 동북아시아의 문화권 전체를 시야 속에 확보한 세계인인 동시에 진경산수의 아름다움을 시야의 중심에 놓은 한국인이었고, 겸재의 진경산수는 ‘밖으로 향한 안테나를 가지고 우리 자신을 새롭게 돌아본’ 결과 탄생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18)

세계인이냐 한국인이냐가 아니라 세계인인 동시에 한국인이어야 한다.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둘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문제다. 양자택일이 아니라 회통이다. (25)

전통은 기억속의 심성이다
세계적인 백남준에게 한국인 백남준이 죽어버린 과거가 아니라 살아 있는 현재가 될 수 있는 비결은 그의 몸 속에 자리잡은 기억이다. 기억의 형태로 몸 속에 저장된 전통이야말로 백남준이 지난날의 수많은 다른 백남준들로부터 물려받아 자신의 작품 구석구석에 숨겨놓은 토속적인 자기의 원천이다. (28)

- 기차가 있는 풍경
기억은 시간을 거슬러 뛰어넘는다. 기억은 시간의 질서에 거역함으로써 세월의 무상함을 넘어서는 인간적인 정체성을 토대로 형성한다. (38)

존재의 속도를 앞지르는 기차의 속도에 따라 생겨난 조급함의 열기는 시간을 거스르는 기억의 되새김질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시간의 흐름보다 앞서고자 하는 조급함의 열기에 휩싸인 나머지 가끔씩 시간의 흐름에서 뒤돌아설 때만 확보되는 기억 속의 심상을 상실한 근대 한국인은, 마침내 인간적인 정체성의 토대가 흔들리는 비극에 직면했다. (47)

된장찌개와 샌드위치
자신의 취향 위에 타인의 취향을 겹쳐놓는 것은 새로운 창조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창조적 모순이다. (50)

* 야나기 무네요시의 한국 예술론
한국인은 한국인의 미의식에 따라 자신의 예술을 바라보아야 하며, 그것은 일본인의 미의식과는 다른 것이다. (59)

- 미적인 위계질서 또는 오리엔탈리즘
한국 예술은 일본인의 미의식에 의해서만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다는 것. 한국 예술에는 자율적인 가치의 척도가 주어지지 않으며, 타율적인 척도로나마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일본인과 한국인에게 차별적으로 적용된 미의식의 위계질서의 본질이다. (71)

- 일본 국학과 야나기의 미의식
국학적 세계관에 사로잡힌 일본인이 조선을 비롯한 이웃 나라의 문화를 존중하는 예외적인 태도를 취한 것은 거기서 ‘일본적인 것’을 발견했을 경우에 한정된다. (78)

타고난 자연스러움에 따른 일본적인 삶이란 결국 신이 마련한 길(神道)에 순종함으로써 신의 은총을 구하는 삶인 것이다. (85)

- 선의 미와 야나기의 환성
야나기가 말하는 선의 아름다움은 취향보다는 이데올로기의 성격을 강하게 지닌다. 전자가 마음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어나온 심상(image)에 가깝다면, 후자는 의도적으로 조작되어 강압적으로 주입되는 표상(representation)에 가깝다. (93)

한국 예술의 선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며, 자유곡선이 아니라 자연 곡선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은 한국적인 ‘선의 아름다움’을 이야기 할 경우 첫손가락으로 꼽히는 한옥의 지붕곡선을 통해 분명히 드러난다. (96)

- 일본 기교(技巧)와 한국의 격(格)
일본의 기교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범’인 반면, 한국의 격은 ‘때에 따라 넘나드는 틀거리’ 라고나 할까. 달리 말하면 한국이 격은 ‘격식에 맞으면서도 격식을 뛰어넘을 때’를 어림하기 위한 가상의 척도 같은 것이다. (107)

- 근대적 자의식과 한국 예술의 민예성
야나기가 마련해준 조선 예술의 천진한 예민성, 조선 도공의 순박한 무지 따위로 자신의 누추함을 가까스로 가리운 근대 한국인의 슬픈 자화상. 이제는 이 같은 식민의 담론과 결별할 때가 되었다. (120)

- 자연과 작위를 통합시킨 일본의 세(勢)
우리는 그의 글 속에 들어 있는 경애의 태도에 귀를 기울일 뿐 아니라 폄하의 태도에도 눈길을 주어야 한다. . . 도대체 남이 억지로 들이댄 잘못된 근거에 따라 나를 터무니없이 깎아내릴 까닭도 없으며 반대로 터무니없이 높여올릴 까닭도 없다. (124)

* 한국인의 미의식

아름다움이란 창조에서 비롯되는 것이요, 창조란 성찰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성찰이란 백인백색의 취향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129)

- 음양오행과 상(象)의 미의식
사상이 일상의 척도로 작용할 경우 취향의 형태를 띤다. 따라서 본래 취향으로부터 형성된 사상은 다시 취향을 통해 전승되며, 취향을 통해 퍼져나간다. (139)

화강암이 한국인의 손에 유달리 익숙하게 다루어졌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것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이 한국의 미를 대표하는 것으로 손꼽힌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그것은 가까이 보기에는 졸한 듯 하지만 멀리서 보면 아를 발하는 화강암의 질감이 상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한국인의 미의식과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141)

- 아졸미(雅拙美) 또는 고졸미(古拙美)
깃과 옷고름은 비대칭으로 배치하여 균형을 깨는 듯하면서도 차원을 달리하는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 내는 한복 저고리의 구조적인 아름다움도 이 같은 비균제성의 구체적인 예다. (152)

- 발효맛과 생기의 미감
발효음식은 살아 있는 유기체들의 덩어리로 이루어진 것이며, 발효맛은 잘 삭힌, 시원하고 칼칼한, 생기 있는 맛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살아있는 유기체가 발산하는 생기의 느낌을 추구하는 상의 미의식과 통한다. (157)

- 상극적인 것을 상생적인 것으로
발효 원리의 핵심은 부패균을 죽이는 상극적인 방식이 아니라 발효균을 살리는 상생적인 방식을 취한다는 것이다. (166)

비보의 원리란 상극의 원리가 관철되는 무정한 자연을 상생의 원리가 숨쉬는 유정한 자연으로 바꾸려는 인문적인 자의식의 소산이다. (169)

- 해학과 신명
한국인의 자화상은 눈물을 웃음으로, 한을 흥으로 승화시키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상극적인 것을 상생적인 것으로 변용시키는 해학과 신명의 본질이 관철된다. (173)

상극적인 것을 상생적인 것으로 변용시킴으로써 생겨나는 ‘가동적인 정지태’의 절제된 움직임은 한국인의 ‘기억 속의 심상’을 대표한다. 오늘날에도 그것은 김기창의 ‘취발이’나 오윤의 ‘춤’을 통해 지난날 기억 상실의 어두운 터널을 뚫고 우리 앞에 되살아 나는 중이다. (178)

한(恨)은 흥으로 발효된다
한국인 자화상의 울음이란 웃음으로 승화되어가는 전단계이며, 한이란 신명으로 승화되어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178)

- 고지도와 명당론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시간적 파악이 역사라면, 그 공간적 인식이 지리와 지도이다. – 한영우, 우리 옛지도와 그 아름다움 (185)

한국인의 공간 의식을 한눈에 실감하게 하는 아름다운 고지도는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고지도가 오늘날의 지도와는 달리, 땅의 모습을 기록하는 실용적인 기호의 성격과 함께 땅의 형상을 묘사하는 예술적인 도상의 성격을 아울러 지녔기 때문이다. (188)

땅은 살아 있는 유기체다
고지도에 담긴 한국인의 공간 의식 또는 공간 취향은 땅을 인체와 마찬가지로 뼈대(산줄기)와 핏줄(물줄기)을 갖춘 살아 있는 유기체로 본 것이다. 땅을 살아있는 유기체로 보는 생각을 체계화 시킨 것이 풍수사상이다. (190)

오늘의 한국인은 일상에서든 기억에서든 문화예술에서든 이 같은 공간 취향을 확인할 기회가 드물다. 산줄기는 개발에 의해 잘려나가거나 고층건물로 가려지고, 물줄기는 오염에 시달리거나 도로로 덮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199)

- 백의와 색동
한국인이 좋아하는 색은 무엇보다 ‘밝고 맑은’ 색, 즉 명도와 채도가 아울러 높은 색이다. 한국인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노랑저고리에 빨강 치마’라는 이미지가 이것을 상징적으로 대표한다. (201)

한국인은 흰 옷을 즐겨 입었으며 흰 색을 좋아했다. 흰색은 색이 없는 무색이 아니라 자연의 바탕색인 소색이다. 소색은 옥양목이나 비단, 광목의 색처럼 재질에 따라 다양한 뉘앙스의 색감을 드러내는 자연의 바탕색이다. (206)

오방색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 민족이 누려온 수많은 색 가운데 순수한 우리말로 된 명칭은 하양, 까망, 빨강, 노랑, 파랑의 다섯 가지 뿐인데, 이것이 바로 오방색이라는 것이다. (211)

이데올로기적 표상인 백의 민족의 강박적인 이미지를 머리 속에서 거둬내야 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우리는 색동옷과 녹의 홍상, 노랑 저고리에 분홍치마, 오방색의 화려한 배합인 단청, 자주색의 삼회장 저고리, 색동보다도 고풍스럽고 몬드리안보다도 모던한 조각보의 색 꾸러미처럼, 아득한 기억의 지평선 너머로 밀어냈던 색채적 심상을 기억 속에서 되살릴 수 있다. (222)

고유색의 부재란 한국 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문화 전반의 문제인데, 이 같은 문제의 배경에는 색 취향을 비롯하여 취향 전반을 잃어버린 한국인의 기억상실이 자리잡고 있다. (225)

잃어버린 기억의 회복은 일상과 취향의 변화가 문화와 예술의 변혁으로 이어지는 한 판의 반전으로 전개 될 것이다. 일상과 취향의 변화가 출발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마음 속의 빗장을 열어젖혀야 한다. (227)

* 취향과 성찰 그리고 내일의 한국인
- 이데올로기에서 취향으로
미학의 문제에 관한한, 아름다움의 향기가 사회학적인 눈금 너머로 부드럽게 퍼져나가는 인문학적인 여백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반듯한 이데올로기 보다는 갈짓자의 취향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31)

- 상생 지향과 탈속의 아름다움
상생의 자연 질서 앞에서 상극의 인간 질서를 해소 시켜버린 정태적인 무의식이 아니라, 상극의 인간 질서를 온몸으로 껴안으며 그것을 상생의 자연 질서로 승화시키고자 애쓴 역동적인 자의식. 이 같은 역동성이 즐거움이나 해학적인 생기로 표출된 것이다. (245)

- 정태적이고 자폐적인 유토피아
그의 동심에는 적요와 명랑, 쓸쓸함과 즐거움이 함께한다. 쓸쓸함과 즐거움이 함께 한다는 것. 이것은 자신들의 몫인 인간의 문화를 천지인 전체의 상생적인 조화를 이룩하기 위한 비보물로 간주한 한국인이, 어느순간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적인 자의식 자체를 놓쳐버렸기 때문일런지도 모른다. (258)

- 허무주의와 샤머니즘의 극복
정태적이고 자폐적인 유토피아에 들어앉고자하는 닫힌 마음 대신, 역동적이고 개방적인 유토피아를 향해 걸어나가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동시에 우리의 저다움 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은자(隱者)의 소극성 또는 폐쇄성을 벗어 던지고 세계시민의 적극성 또는 개방성을 추구해야 한다. 자연의 질서인 상생 대신 인간의 질서인 상극을 전면에 내세우는 서구적 근대와 인간의 질서인 상극을 자연의 질서인 상생 속으로 통합시키는 한국적인 저다움을 ‘창조적인 모순’으로 통합시켜야 한다. (261)

- 역동적이고 개방적인 유토피아
우리는 드물기는 하지만 개인적인 창조의 에너지가 집단적인 이데올로기의 껍질을 뚫고 개성적인 취향의 속살을 드러냄으로써, 상극의 인간 질서 너머에 존재하는 상생의 우주 질서를 향해 손을 뻗친 경우와 마주친다. (267)

- 김정희와 연경의 기억
‘남의 유행’을 참고해서 ‘토속적인 자기’를 새롭게 하고자 한 것이랄까. 아니면 ‘밖으로 향해 있는 안테나를 가지고 우리 자신을 새롭게 돌아본’ 것이랄까. 이것이 바로 김정희의 창작 방법론으로 거론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올바른 해석이다. (271)

새로운 전통의 창조란 언제나 개인의 개성이 집단의 개성을 뛰어넘고 이것이 다시 집단의 새로운 개성으로 자리잡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277)

우리는 이 같은 공존을 옛것 쪽으로 되돌리거나 혹은 새것 쪽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그것들을 하나로 버무려내는 모순적인 공존을 통해 창조의 길로 나아가는 유연하고도 열린 사고를 가져야 할 것이다. (278)

회통적인 사고. 한국인과 세계인 사이에서 법고와 창신 사이에서 회통적인 사고를 모색한 사람들만이 창조라는 새 역사의 문을 열어 젖힐 수 있다. 한국인이기를 원한다면 동시에 세계인이기를 꿈꾸어야 하며 세계인을 꿈꾼다면 결코 한국인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279)
@ 뎀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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