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442p

<달콤한 나의 도시>에는 32살의 '오은수'라는 젊은 여자가 살고 있다. 그녀는 자기 목소리로 자기에게 벌어지고 평범한 일상을 솔직하게 이야기 하는 방법을 안다. 그것도 아주 근사하게.
그녀의 평범함이 부럽다. 솔직함이 부럽다. 감각이 부럽다.
- <달콤한 나의 도시>가 '정이현의 소설'이 아닌 '오은수의 이야기'로 기억되는건 작가의 소망이기도 하다.

한동안 '소설'을 읽는 다는 것은 쓸데없는 시간낭비일 뿐이라 생각했다. 처세서의 한줄을 더 읽고 (언제나 읽을 때 그 뿐이긴 하지만) 한번 깨닫기라도 하는게 내 인생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어떤걸 계기로 이 책을 집어들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 그 순간이 참 다행스럽다.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 속의 따뜻한 느낌을 잃어버린채 차가운 이성만을 머리로 쫓고 있던 나 자신을 반성한다. 때로는 소설 한편이 일만줄의 행동강령이 있는 처세서보다 훨씬 나을 수도 있다. 오은수와 하하하 웃고 울며, 가슴치고 답답해하며 하룻밤을 같이 보내고나니 갑자기 내가 훌쩍 커 버린 느낌이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건 나와 함께, 나처럼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공감과 위로였던 것이다.

내 나이의 앞자리를 갈아치울 때를 앞두고 있다. 누구나 이맘때쯤 그러하듯이 나 또한 불안하고 답답하다. 이런 상황을 오은수는 "이렇게 살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수도 없을 때 서른살은 온다."고 이야기 한다. 딱맞다!
서른살이 된다고 달라지는건 없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친구에게 전화를 하려 번호를 눌러놓고 친구가 전화를 받는 새에 무슨말을 하려 했는지 까먹어 버린다든지, 맛있게 밥을 먹다가 갑자기 밥풀이 이유없이 튀어 나가는 가벼운 증상들이 나에게 보이기 시작할때 쯤. 나는 아무래도 내가 모르는 무슨일인가가 나에게 벌어지고 있는것 같아 불안하다. 나는 나에게 들이닥칠 '서른살'을 위해 뭔가 준비해야 할것만 같다.
서른살의 문 앞에서 지금 나는 매일 매일 궁금하고 또 궁금하다. 나만 이러는건 아닌지, 나는 지금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건지, 자꾸자꾸 이렇게 가면 뭐가 보이는지, 뭔가가 있긴 한건지.

'옛 애인의 결혼식 날, 사람들은 뭘 할까?' 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누구나 한번은 품었음직한 질문들과 일상을 이야기 한다. 너무 평범해서 나도 어디선가 한번 경험했었고, 떠올랐던 기억을 더듬는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일곱살 연하의 남자 '태오'와 사랑을 나누고, 친구같이 편안한 '유준'이의 프로포즈를 우물쭈물 걷어차고, 결국 개량옥수수 낱알처럼 가지런한 '영수'라는 인물을 택해 결혼을 결심하고. (-결론은 소설속에서 확인하시길-) 그 사이사이에 가족을 따뜻이 보듬으며, '재인'과 '유희'와 멀지않은 거리에서 그들의 일상을 함께 하고, 일을 열심히 하는 평범한 여성으로 살고 싶은 소망을 그렸다. 이런 은수의 일상과 바램 속에서 내가 보내야 할 20대 후반과 이제 곧 들어서게 될 서른살의 생활을 보았다.
어디선가 혼자 내뱉었을 법한 '저 놈의 혀를 확 그냥'과 같은 표현들이 적절한 위치에서 튀어나와 주고, "일부처제는 진짜 끝내주게 골때리는 시스템이야."의 가벼운 표현도 대화 속에 자주 등장해 심심하지 않게 해 준다.

이런 느낌과 공감과 감동을 남기고도... 소설의 끝은 쌩뚱맞을 정도로 허무하게 끝난다. 너무도 재밌는 오은수 인생 엿보기에 대한 아쉬움만은 아니었다. 종이 지면이 모자라서 그런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서둘러 마무리를 맺는다. -사실 이 책은 두께에 비해 페이지수가 많다. 종잇장이 얇아서 그렇다- 충분히 훌륭하지만, 조금만 더 성의있는(!) 끝맺음이었다면 칭찬할꺼리가 한가지 더 생겼을 텐데...

오은수의 일상과 독백 중 하나 이상 공감하는 20대 후반 ~ 30대 초반 여성 (나이, 성별 중요!)이라면 가벼운 소설책에 불과한 <달콤한 나의 도시>를 하룻밤에 휘릭- 읽어 제끼고도 묵직한 무언가를 가슴에 남길 수 있을 것을 확신한다. 적어도 '나만 이런건 아니구나'라는 든든한 위안을 얻게 된다. 그나저나. 작가는 어쩜 이렇게 글을 맛깔나게 쓸 수 있는지-

★ 백배 공감가는 '오은수'의 일상 ★

1.
돌이켜보면 언제나 그래왔다. 선택이 자유가 아니라 책임의 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항상, 뭔가를 골라야 하는 상황 앞에서 나는 어쩔 줄 몰라 진땀을 흘려대곤 했다.
때론 갈팡질팡하는 내 삶에 내비게이션이라도 달렸으면 싶다. "백미터 앞 급커브 구간입니다. 주의 운행하세요." 인공위성으로 자동차 위치를 내려다보며 도로 사정을 일러주는 내비게이션 시스템처럼. 내가 가야 할 길이 좌회전인지 우회전인지 누군가 대신 정해서 딱딲 가르쳐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53)

2.
갈수록 뼈저리게 느끼지만,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기가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 결혼에 대한 환상은 없었다. 결혼이란 뜨겁게 사랑하는 남녀가 만나 둘만의 공간을 이루어 오순도순 아웅다웅 행복하게 사는 행위라고 단순하게 정의 내리기에는, 몰라도 좋을 열가지 것들을 너무 많이 알아버렸다. '나만은 다를 거야.' 낙관적 기대에 몸을 맡긴 채 무턱대고 풍덩 뛰어들기에 결혼의 강물은 너무 차고 깊어 보인다. (134)

3.
그러고보니, 나는 부모의 요즘 생활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원래부터 그저 거기 잇는 존재일 뿐. 부모는 단 한번도 나의 반짝거리는 탐구의 대상인 적이 없었다.
자식들이 모두 떠난 집에서 부모는 매일매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부모애 대해 나는 얼마큼 알고 있을까. (191)

4.
그러나 어쩌면 좋으랴. 나이들수록 점점, 아무리 친한 친구에게라도 내 깊은 속내를 쉬이 털어놓을 수 없게 되는 것을. 달팽이가 자꾸만 동그랗게 몸을 움츠리는 것이 달팽이의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204)

5.
스무 살엔, 서른 살이 넘으면 모든 게 명확하고 분명해질 줄 알았었다. 그러나 그 반대다. 오히려 '인생이란 이런거지'라고 확고하게 단정해 왔던 부분들이 맥없이 흔들리는 느낌에 곤혹스레 맞닥뜨리곤 한다. 내부의 흔들림을 필사적으로 감추기 위하여 사람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일부러 더 고집 센 척하고 더 큰 목소리로 우겨대는 지도 모를 일이다. (227)

6.
나의 옛 연인들은 제 각각 다양한 결격 사유들을 치질처럼 숨기고 있었다. 그런데, 나와 헤어진 뒤 그들 대부분이 결혼하여 멀쩡한 결혼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내게는 치명적이었던 그 남자들의 문제를, 다른 여자들은 둥글게 감싸 안고 살아가고 있는거다. 나의 연애들이 무위로 돌아간 것은 그 남자들의 사정 때문이 아니라 나의 사정 때문임을 이제는 알겠다. (289)

7.
다른 여자들도 옷장을 열 때면 늘 한숨부터 날까? 벗고 다니지는 않았으니 무언가 몸에 걸치고 다녔음이 분명할텐데 왜 옷이 없을까? 대체 매일 매일 무슨 옷으로 연명하고 있는지 불가사의할 뿐이다. (332)

8.
이제는, 세월이 속수무책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에 차곡차곡 쌓인다는 걸 알겠다. (361)

9.
한때 서울이 아닌 다른 도시에서 살고 싶다고 간절히 바란 적이 있었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골목들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라면, 지겨운 내 본모습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407)

10.
서른두 살. 가진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다. 나를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내가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도 없다. 우울한 자유일까, 자유로운 우울일까. 나,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무엇이든? (440)

@ 뎀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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