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을 보셨습니까?

사생활 /   2007. 8. 8. 22:24

길거리에서 사람들 손에 쥐어진 꽃다발에 자꾸 눈길이 멈춥니다. 졸업시즌도 아니고 어버이날이나 스승의 날처럼 꽃다발로 위장해야 하는 날도 한참 전에 지났는데 꽃다발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특별한 날에만 사치스럽게 갖춰 들었던 꽃다발이 이젠 일상에서 아주 가깝게 만나 볼 수 있는 낭만이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꽃다발이라 하면 무조건 가운데 빨간 장미 한 송이 넣고 주변을 안개꽃으로 둘러싼 것이 가장 운치 있고 멋있었습니다. 돈이 조금 더 있는 날에는 장미를 세 송이 다섯 송이 (꼭 홀수로 넣는 것이라며) 핵심을 추가하기도 했고. 하릴없이 안개꽃만 잔뜩 넣어 선물 하는 것을 멋으로 알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안개꽃이 모자란 경우에는 비닐 포장지에 하얀 땡땡이가 그려져 있어 마치 안개꽃이 많은 것처럼 보이게 포장 하기도 했습니다. 빨간 장미만 스물 세 송이 묵직하게 들어있는 꽃다발을 받는 날은 그야말로 대박이었죠.
그러다가 점점 포장이 화려해 졌고, 결국에는 꽃보다 더 큰 치맛자락을 두른 다발들도 나타났습니다. 리본도 두 세 개씩 꽁꽁 묶어두고 손으로 잡을 공간이 없을 만큼 많은 장식을 끼워 넣어주는 집이 꽃다발을 잘 만드는 집으로 소문이 났습니다.

이제 다시 소박함으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큰 장식 없이 최대한 꽃이 드러나 보이도록 포장하는 것이 유행인가 봅니다. 그래서 꽃다발의 아름다움도 꽃의 종류만큼 다양해졌습니다.
오늘 봤던 꽃다발 중에는 분홍색과 보라색의 꽃들이 어우러져 있던 꽃다발이 가장 예뻤습니다. 예전에 연구원 마지막 수업 때 선생님께 드렸던 꽃다발과도 비슷합니다. 꽃 이름을 모르겠네요. 한번도 본적 없던 꽃이예요. 제가 한창 꽃다발을 사던 시절에는 없던 꽃인걸 보니 새로 수입이 된 꽃이거나 예전의 꽃이 개량된 종인 것 같습니다. 투명 비닐에 둘둘 말려 있었지만 꽃의 아름다움으로 충분히 품위 있어 보였습니다.
지하철에서는 백합 세 송이를 장식 없이 포장한 꽃다발도 근사해 보였습니다. 길다란 백합의 초록 줄기는 그대로 드러나고 잡기 좋게 세 송이를 한데 묶은 소박한 리본이 장식의 전부 입니다. 두 송이는 활짝 피어 꽃밥이 가운데 뽕긋 솟아 있고 수술 여섯 개는 나란히 꽃밥을 향해 뻗어 있습니다. 나머지 한 송이는 아직 필락 말락 준비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무조건 활짝 핀 꽃만을 최고로 여겼는데. 이젠 봉우리 꽃이 필 만큼 기다릴만한 여유도 사람들에게는 생긴 것 같습니다.

꽃다발에 한참 빠져 있는데. 난데없이 ‘아. 부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꽃다발을 선물하거나 선물 받거나. 했던 기억이 까마득히 오래 전 일이었네요. 꽃다발이라는 이름의 물건을 손에 쥐어본 게 참으로 오래 전 일입니다. 그냥 쉽게 집어들 수 있을만큼 널려 있고, 부담없이 살 만큼 경제적 여유도 생겼는데. 참으로 이상합니다.
사실, 봄에 지하철을 지나다가 후리지아 향이 한창이어서. 이 꽃을 사서 직장 동료의 책상에 몰래 꽂아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와 약속 장소로 나가면서 해바라기 한 송이를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서둘렀습니다. 그날 일들이 새삼스럽게 후회가 됩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 마음에 꽃다발 하나 들여놓을 만한 여유가 없었음이 스스로 갑갑해지네요.

나에게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그런 날에도. 사람들은 저마다 아름다움을 선물하며 추억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 하니 조금 외로워지는 것도 같군요.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주고 받고 있는 틈바구니 속에서 내 마음에 아름다움을 선물한지가 참 오래됐음을 반성합니다. 메마른 제 마음에 꽃다발이 놓여있는 풍경을 만들어 봐야겠습니다. 주거나 받거나 똑같이 아름다운 풍경일 것입니다. 꽃다발이니까요.

@ 뎀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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