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박진영) : 070060805

책읽기 /   2007. 8. 20.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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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박진영 지음
김영사 펴냄
p224







7년전 스물아홉의 박진영이 쓴 책을 오늘 읽었다. 데뷔때부터 이러저러한 말이 많았고, 박진영이라 하면 무조건 악플부터 쓰고 보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야 어떻든 나는 박진영이 좋다. 예전에는 많이 좋아했고, 한동안은 그저 싫어하지 않는 정도로 좋아했고, 이 책을 읽고서는 다시 많이 좋아졌다.
박진영은 역시 멋있다. 선동가처럼 보이는 밀어부침이 좋고, 흔들림 없이 올곧아 보이는 생각들이 좋고, 반항하는 딴따라처럼 차려 입은 그의 현란함이 좋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해야할 일, 그리고 이 사회에 대해서도 올바른 생각을 갖고 있는 보기 드문 젊은이다.
스물아홉의 그 생각들은 7년후 지금의 그를 만들어 냈고, 그 시절의 생각들이 옳았음을 그는 현재의 자리로써 증명해 주고 있다. 많은 가수들을 키워냈고, 프로듀서 일을 훌륭히 해 내고 있고, 올해초 하버드 대학 주최 한류포럼에서 아시아 작곡가 최초로 강의를 펼치기까지 박진영의 활동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세계의 이슈거리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모든 문제들에 대한 답을 내는 것을 좋아한 박진영은, 누가 물어보지 않아도 혼자서 몇시간이고 계속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해 보고 답을 낸 후 다시 그 답을 반대 입장에서 또다시 생각해 보고 그러기를 몇번 하고 나서 그 문제에 대한 최종 입장을 정하고 머릿 속에 정리해 두었다. 그리고 누가 그 문제에 대해 물어보면 망설일 필요 없이 곧바로 미리 정리해 놓은 답을 꺼내서 말해줬다. 이런 생각들이 나이를 먹으면서부터 너무 많아지고 머릿속에 저장해 놓은 '문제와 답'은 포화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이제 내 머릿속을 깨끗이 비울 때가 되어 이 책을 쓰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는 자신의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이 책의 앞에 썼다.

박진영은 네살때부터 엄마가 쌀씻는 소리에 맞춰서 춤을 췄다. 그렇게 춤 추는 것을 좋아하고 춤을 잘 췄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춤을 잘 춘다고 하는 칭찬 할때마다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 자신이 땀 흘려 이룬것이 아니라 타고난 것이기 때문이라나. 그래서 박진영이 칭찬 받을 일이 아니라 그렇게 낳아준 부모님이 칭찬 받을 일이라 한다.
자신에게든 남에게든 타고난 것에 높은 점수를 주기 싫어하는 그는 데뷔 이후 지금까지 사람들의 칭찬을 '춤 잘 춘다'에서 '음악을 잘 만든다'로 바꾸기 위해 모든 시간을 보냈다.
데뷔 전 2년간 작곡 공부를 해 1집을 만들었고, 1집이 성공한 후 곧바로 편곡 공부를 시작해 2집에서는 처음으로 <엘리베이터>란 곡을 편곡했고, 3집 앨범에서는 드디어 앨범 전체를 작사, 작곡, 편곡 및 프로듀싱을 했다. 그리고 결국 그 앨범의 수록곡인 <그녀는 예뻤다>로 '최우수 편곡상'을 수상했다. 이 상으로 온 세상을 다 얻은것 같았고, 최우수 가수상을 받은 사람이 조금도 부럽지 않았다.

메세지를 담아내지 못하는 음악에 대해 비판하는 이야기에도 나름대로의 기준과 생각이 명확하다. 박진영은 자신의 1집~5집, 진주, GOD, 그 밖에 다른 어떤 가수들의 노래에도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의 곡을 쓰지 않았다. 소위 '메세지'가 없는 것이다.
박진영 역시 누구보다도 사회의 여러 문제를 개혁하고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일익을 담당하고 싶지만, 자신의 음악에 그런 내용을 담는 것이 너무 조심스럽다. 모든 사회 문제에는 원인이 있는데, 그 원인이 굉장히 복합적이라서 그 해결방법 역시 간단하지가 않으니 지금은 그런 문제들에 대해 아무런 대책을 제시해 줄 능력이 없다. 박진영은 해결하는 쪽에 있고 싶어 하고, 어느정도 해결 방법에 자신이 있을 때, 자신의 말에 책임 질 수 있을때, 그때 말하고 싶다 한다. 그게 스물아홉살의 그가 '메시지 없는 가수'로 남아있던 이유다.


재밌는 애, 잘 놀았던 애, 술 주고 무대 펼쳐주면 잘 놀았던 애. 그렇게 노력하다 음악하다 놀다가 까불다가 죽은 애. 로 기억되고 싶어하는 박진영은. 역시 좋아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스물아홉에 쓰는 글들도 이정도의 생각들은 담아내야겠다고 반성과 결심을 하며 읽었다. 나보다 잘난 스물아홉살이 쓴 책이었지만, 읽고나서 기분이 좋아졌다. 완벽하진 않지만 딱 스물아홉스러운 생각들이 가득하다.



* 박진영을 최고로 만든 세가지 생각

1. 희망고문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행동은 같이 좋아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럴 수 없다면 그 다음에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행동은 절망을 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둘 사이에 애인으로서는 전혀 희망이 없음을 분명히 인식시켜 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작은 희망 하나로 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계속 당신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에겐 본능적으로 최대한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은 욕망이 있어서, 자신은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자신을 좋아하길 바란다. 심지어 자신은 애인이 있을 때도 말이다.
술에 취해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목소리 듣고 싶어 전화했어’라고 전화를 한다든지 사귈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과 그냥 괜찮다는 이유만으로 데이트를 한다든지, 싫어서 헤어지면서 이유는 집안이 어려워서, 옛애인을 못 잊어서, 혹은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 라고 말을 한다든지 하는 행동들은 모두 상대방에게 ‘희망’을 주는 행위들이다. 그러나 이런 행위들은 그 사람 가슴에 안타까움과 속상함, 집착등을 남겨 큰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이러한 행위를 나는 ‘희망고문’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웬만하면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러한 ‘고문’을 하지 말자. 당신이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는 희망을 주지 않음으로써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찾아 떠나갈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니까. (76)


2. 용기란.

'용기란 무서워하지 않는 게 아니라, 무섭지만 그래도 하는 거다.'
어디선가 본 이 말이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나는 내가 용감할 때도 항상 겁이 났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진영이는 용감하다고 할 때도 속으로 엄청 찔렸는데, 하하! 나는 용감한 사람 맞다. (143)


3. 여자친구

나 말고도 다른 것에 관심이 많은 여인,
내가 생활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인 여인,
내 말이 하나의 의견일 뿐인 여인, 옷과 머리를 자기 개성대로 마음껏 표출하는 여인,
친구들과 놀다 신이 나면 집에 늦게 들어가는 여인,
나에게 밥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밥을 사 먹는 여인,
청소 빨래 등은 하지 않고 자기의 꿈을 찾아 열심히 일하는 여인,
다른 남자들도 만나는 여인, 다 같이 놀러가면 남자들이 밥을 해주는 여인,
다른 남자들이 빼앗아 가려고 넘보는 여인,
즉 나에게 있어 불안한 여인, 언제 놓칠지 몰라 내 곁에 있는 게 소중한 여인. (40)




* 책 속의 좋은 글들 

음악

딴따라라는 단어는 직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다시 말해, 어떤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종류를 가리키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가수이지만 딴따라가 아닌 사람을 많이 봤고, 또 대학교수이면서 딴따라인 사람도 많이 봤다. 그러니까 딴따라는 직업에 관계없이, 춤추고 노래하는 걸 워낙 좋아해서 그걸 하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해 하고, 그리고 또 재주도 있어서 그걸 보고 있는 다른 사람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다시 말해서 선천적으로 그런 재능을 타고 났으면 그는 직업에 관계 없이 딴따라인 것이다. (21)

내 생각에는 사람들이 딴따라가 멋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미워하게 되는 것 같다. (24)


사랑

저는 동물원 원장입니다. 당신은 희귀종 동물이고요. 저는 동물원에 들어오기 전 당신이 살던 환경을 그대로 재연해 주어야 합니다. 당신이 변하지 않게 말이죠. 당신이 게으른 동물이라면 계속 게으를 수 있게. 당신이 뚱뚱한 동물이라면 계속 뚱뚱할 수 있게. 당신이 동물원에 들어와서 변해 버린다면 당신을 데려온 의미가 없으니까요. 당신도 동물원 원장이 되어 주십시오. 그리고 날 희귀종 동물로 생각해 주십시오. 우리 서로의 못된 점까지도 그대로 보존해 줍시다. – 결혼하는 마음 (42)

나의 신부에게 하는 부탁
나에게 기대지 마십시오. 당신의 두 발로 굳건히 선 채 제 손을 잡아 주십시오.
나를 보고 있지 마십시오. 저를 등지고 저 넓은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뒤에 제가 있으니까요.
나에게 묻지 마십시오. 당신이 원하는 게 뭔지 잊어버리니까요.
나에게 남편이라 하지 마십시오. 저는 변함없는 친구 진영이니까요. (44)

나는 살짝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가 시댁에서 한번 일할 때마다 대신 집에 돌아와서는 “반반씩 하기로 한 집안일을 내가 일주일 동안 혼자 할게” 라고 말했다. (54)

가장 외롭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사람도 외롭다.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때 당신이 목격했을 뿐이다. 아무리 진실하고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많은 사람도 어느 한 순간 갑자기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누구나 외롭다. 지금 당신 차례일 뿐이다. (90)




실수는 용납하는 사람에게만 간다. (107)

내가 공연을 하는 방법은 한가지 뿐이다. 그저 최고의 음악을 만들어, 그 음악과 춤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준비하고, 최선을 다해 노래하며 춤추는 것. 국가 경제가 좋든, 나쁘든, 큰 무대이든, 조그마한 무대이든, 출연료가 10원이든 천만원이든 내가 아는 방법은 그 한가지 뿐이다. (109)

중요한 것은 얼마만큼의 원칙과 얼마만큼의 융통성을 섞느냐는 것이다. (111)

인정하자. 우린 이 사회 속에서 분명 하나의 상품이며 우리의 가치는 가격으로 매겨진다. 우리는 자신의 가격을 높이기 위하여 공부를 하고, 학위를 따며, 몸매를 가꾸고, 심지어 성형수술까지도 한다. 나 역시도 줄곧 이 사회 속에서 ‘박진영’이란 상품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끝없이 노력했다. (112)

대체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일, 또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지 깨닫는 일, 두 가지가 병행이 될 때 비로소 자신의 가치를 진정으로 올릴 수 있을 것이고, 또 그 성공이 행복으로 고스란히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117)

우리가 정말 포기하는 이유는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불가능할 것 같아서이다. (122)

이 세상에 착한 사람, 못된 사람은 없다. 착한 행동, 못된 행동만이 있을 뿐이다. 사람은 착한 행동도 하고 못된 행동도 한다. 따라서 어떤 한 사람을 평가하려면 착한 행동, 못된 행동 중에 어느 쪽을 더 많이 하는지 꽤 오랜 시간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135)


사회


내가 바라는 것은 하나 뿐이다. 제발 자신이 만들었거나 믿고 있는 신념 혹은 이데올로기가 아무리 확실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100퍼센트 완벽한 이론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으면 한다. 그러기에 최소한 1퍼센트의 융통성이라도 열어 놓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이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며, 그렇기에 오히려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184)

우리는 최선을 다하는 것을, 그리고 최선의 방법을 택하는 것을 마치 정답대로 실행한 것처럼 착각 하고 있다. 그러나 최선이라는 말은 결국 정답이 아니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최선의 것이라는 이유로 정답을 믿으며 살아가고 있다. (192)

나는 내가 한 말에 대해서 반대 의견을 제시하면서 반박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너무나 반가워 한다. 토론이 격해지다 못해서 멱살잡이를 할지언정 난 하나의 주제를 놓고 싸우는 것이 좋다. 나의 너무나도 모자란 개똥 철학을 그런 싸움들을 통해서 수정하고 보완하고 때로는 완전히 파괴하고 박살낸 후 다시 쌓아가면 결국 그것이 나의 재산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의 가치관의 모순을 발견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좀 더 똑똑해질 기회를 주는 이를 나는 늘 기다린다. (210)

@ 뎀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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