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복과 나비 (장 도미니크 보비) : 080071207
책읽기 / 2008. 1. 2. 00:09
잠수복과 나비
장 도미니크 보비 지음 / 양영란 옮김
동문선
p 176
2007년 8월. 어둠속의 대화라는 전시를 관람 했다. 관람이라 하기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그저 느낌만이 존재하는 암흑세계(!) 체험이다. 전시장은 검은색으로도 보이고 회색으로도 보이고 그저 멍~ 하게 보이는 시커먼 공간이다. 전시는 시각 장애인들의 안내로 숲을 지나고 시장을 지나고 도로를 지나 카페에서 차 한잔을 마시고 돌아오는 코스다. 나에겐 실제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하얀색 안내봉(?)만 주어졌다. 그리고 소리와 냄새, 느낌만으로 더듬더듬 찾아가야 했다. 간단한 코스를 도는데 한시간이나 걸렸다.
무엇이 만져지나요? 어떤 느낌인가요? 라는 안내원의 질문에 우리는 나뭇잎이요. 시냇물이요. 라는 대답을 했다. 느낌을 이야기 하라는데 자꾸 내 기억 속의 무엇인가를 꺼내어 이야기 하려 들었다. 선천적인 시각장애인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후천적으로 시각을 잃게 되는 사람들은 모든 경험의 범위가 머릿 속의 기억에 갇힌채로 살아가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욱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오감중 시각 하나가 닫혔을 뿐인데, (일반적으로 80%이상의 정보를 시각으로 받아들인다고 함.) 그 또한 이 전시 체험이 끝나고 나면 곧 괜찮아 지리라는 보장이 있는데도 끊임없이 혼란스럽고, 어지러웠다. 경험해 보지 않고는 절대 상상 할 수 없는 혼란이었다. 호기심보다도 현기증이 앞서 조금 힘들기도 했다.
어느날 갑자기 나의 모든 의식은 살아 있는데 오감이 닫힌다면, 생각같아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몸이 잠수복을 입은 것처럼 꽉 조여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나에게는 어떤 생각이 찾아올까. 무슨 이야기들을 남겨주고 싶을까. 그렇더라도 나는 무엇인가를 이뤄내기 위해서 이토록 열심일 수 있을까?
장 도미니크 보비는 1952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앞서가는 정신의 소유자로서 누구보다도 자유를 구가하던 그는 1995년 12월 8일 금요일 오후 갑작스런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3주후. 의식을 회복했으나,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왼쪽 눈꺼풀 뿐. 그로부터 그의 또 다른 인생, 비록 15개월 남짓에 불과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
여성편집자인 클로스 망디빌이 읊조리는 알파벳에 맞추어 유일한 의사소통 수단인 왼쪽 눈꺼풀을 깜빡거려 써 내려간 글이 하루에 반쪽분량, 15개월 동안 20만번 이상 깜빡거려 완성한 책의 제목은 <잠수복과 나비>. - 책 날개에 책 소개 내용 중
ESARINTULOMDPCFBVHGJQZYXKW
얼핏 보기에는 무질서해 보이는 이 글자 행렬은, 하지만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치밀하고 복잡한 계산의 결과이다. 따라서 단순한 알파벳이라고 하기 보다는, 프랑스어에서 사용되는 빈도에 따라 철자를 배치한, 이를테면 글자들의 빌보드 차트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자주 쓰이는 E가 제일 앞에 오고... (중략)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ESA... 로 된 알파벳표를 내게 펼쳐 보이면, 나는 내가 원하는 글자에서 눈을 깜빡인다. 상대방은 그 글자를 받아 적으면 된다. 똑같은 과정을 그 다음글자에서도 계속 반복한다. (30)
이렇게 잠수복과 나비는 쓰여졌다.
나는 점점 멀어진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멀어지고 있다. 항해중인 선원이 자신이 방금 떠나온 해안선이 시야에서 사라져 가는 광경을 바라보듯이, 나는 나의 과거가 점점 희미해져 감을 느낀다. 예전의 삶은 아직도 나의 내부에서 불타오르고 있지만 점차 추억의 재가 되어 버린다. (105)
위와 연결된 존데를 통해 투여되는 두세 병 분량의 갈색 물질이 나의 하루분 필요 열량을 충당해 준다. 다만 감각적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머릿속에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맛과 냄새에 대한 기억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기억이야말로 감각의 무궁무진한 보고이다. 먹고 남은 음식만을 가지고도 새롭게 먹을 수 있도록 조리하는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나에게는 기억을 더듬어 오래오래 음미하는 기술이 있다. (50)
의사소통의 단절은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서 중압감으로까지 느껴진다. (56)
나는 때때로 일방통행식 대화로 만족해야 하는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할지 무척 궁금하다. 나 자신은 번번이 마음이 요동할 정도로 감정을 제어하기 힘들다. 다정한 친지들의 전화에 침묵이 아닌 아무말이라도 한마디 할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 (58)
아마도 혼수 상태의 특징일지도 모른다. 현실로 돌아갈 수 없는 상태이므로 꿈은 증발해 버리지 못하고, 오히려 반대로 똘똘 뭉쳐 기나긴 환상 효과를 만드러 연재 소설처럼 문득문득 기억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것은 아닐까. 오늘 저녁에도 그때 꾼 꿈의 일부가 머릿속에 또렷이 떠오른다. (68)
나는 비록 허수아비 같은 아버지가 되어 버렸지만, 부산스럽게 움직여대고 투덜대는 테오필과 셀레스트, 이 두 아이만큼은 활기가 넘친다. 나는 아이들이 걷는 모습만 줄곧 보고 있어도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95)
내 의사 소통 체계로는 즉각적인 응수가 불가능하다. 한마디 대답하기 위해 몇분씩이나 시간을 끌다보면, 언어의 섬세한 뉘앙스는 무디어지다 못해 아예 무미건조해지고 만다. 문장을 완성시켜 놓고 보면, 뭐가 그리도 우스워서 한자한자 끈질기게 받아 적도록 요구했는지조차도 잘 납득이 가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므로 불쑥불쑥 감정을 순간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그러다 보니 대화라는 파도에서 표면에 떠오르는 은빛 거품이 모두 제거되는 격이다. 탁구공처럼 재빨리 되받아 넘기는 재치 있는 말을 구사할 수 없는 것이, 내가 처한 상태가 가져다 주는 불편한 점 중의 하나이다. (98)
소동이 가라앉고 다시 침묵이 찾아오면, 나는 비로소 내 머릿속에서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나비들의 움직임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 나비의 날개짓은 아주 미세하기 때문에, 이를 감지하기 위해서는 명사엥 가까운 주의력이 필요하다. 숨소리가 조금만 커져도 그 소리에 파묻혀 버릴 정도이다. 어찌보면 매우 놀라운 일이다. 내 청각은 향상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비 소리를 점점 더 잘 듣게 된다. 어쩌면 내가 나비의 귀를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134)
오늘은 일요일이다. 병문안 오는 방문객이 불행히 한명도 없어서, 따분하고 느릿느릿한 시간의 흐름을 깨뜨릴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두렵기만 한 일요일 (136)
한편으로는 이렇듯 정지한 듯한 시간이, 다른 한편으로는 미친듯이 재빨리 달음박질치는 것은 무슨 역설에서일까?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나의 보잘것 없는 세계에서 한 시간은 한없이 늘어지지만, 반대로 한달은 마치 번개처럼 순식간에 달아나 버린다. (138)
나는 여행을 굉장히 좋아했다. 운좋겠도 과거 여러 해동안 많은 풍경과 감동, 그리고 감각을 차곡차곡 저장해 두었으므로 여기처럼 하늘이 온통 잿빛이라 외출할 엄두를 낼 수 없는 날에도 나는 상상의 여행을 떠날 수 있다. (141)
열쇠로 가득찬 이 세상에 내 잠수복을 열어 줄 열쇠는 없는 것일까? 종점 없는 지하철 노선은 왜 없을까? 나의 자유를 되찾아 줄 만큼 막강한 화폐는 없을까? 다른 곳에서 구해보아야겠다. 나는 그곳으로 간다. (174)
나는 단지 아주 나쁜 번호를 뽑았을 뿐
나는 장애자가 아니다
나는 단지 돌연변이일 뿐이다 (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