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 우리는 항상 도망을 꿈꾼다.
책읽기 / 2008. 8. 12. 07:45
우리는 항상 도망을 꿈꾼다. 자신이 원한 삶이든, 어쩔 수 없이 흘러 오다 보니까 살게 된 삶이든 간에 현실은 언제나 도망을 꿈꾸게 만든다. 현실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늘 도망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고 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도망칠 수도, 도망갈 곳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환기구 없는 방에 갇힌 것처럼 끔찍하지 않을까.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 김혜남)
도망의 매력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 아무도 모르게 간다는 것이다.
나 북한산으로 도망가요! 라고 광고하면서 출발하면 그건 도망이 아니다.
또, 내가 도망이랍시고 갔는데,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다면 그것도 도망이 아니다.
내가 없어졌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되,
어디로 언제쯤 떠나는지, 언제쯤 돌아올지 아무도 모르도록 해야 한다.
심지어 가끔은 나도 모르기도 한다.
출발일자도 도착지도 갑자기 정해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도망이라는 이름으로
작정하고 아무때고 계획 없이 떠나는 일은 난데없이 이루어진다.
금요일 저녁에 급작스럽게 떠나는 정동진 여행도 좋고,
주말 오전에 늘어져 있다가
이유 없이 검색창에 당일치기로 검색되어 나오는 곳 중 아무데나 골라 잡아 떠나도 좋다.
도착지 없이 무조건 출발할 수도 있다.
내 마음이 원하기만 할 때면 언제고 출발할 수 있다.
그래서 언제나 도망은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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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 지음, 갤리온 펴냄
서른살이 되면서 '서른'으로 검색되어 나오는 책들을 모조리 읽었다.
그 중 이 책은 가장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다.
그리고 가장 추천할 만한 책이다.
(가장 붸뤡인 책은 죄송하지만, 강금실의 서른살의 당신께)
사실, 이 책은 서른살의 심리학이라기보다는 일반 심리학에 서른살을 얹었다.
서른살이라고 특별히 느껴지는 감정을 다뤘다기 보다는
누구나 느끼는 심리를 서른살에 갖다댔다는 말이다.
이렇게 어쩌면 뻔한 심리 이야기를 매순간 무릎을 치며 공감하며 읽어나갔던 이유는
서른이 되어서야, 이제서야 막 내 심리를 제대로 알아차리기 시작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김혜남 선생님은
자존감, 자기애, 인정, 공감, 용기와 같은 긍정적인 면보다
우울, 방황, 방어, 불안, 공포와 같이 어두운 심리를 더 잘 다루는것 같다.
그냥 믿거나말거나 내 생각이다.
어쨌튼, 이 책은 서른살이건 스무살이건
내 존재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젊은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서른살은 한 세계의 끝이자 다른 한 세계의 시작이다. 하나의 문이 쾅 닫히고 다른 문이 열리면서 과거에 누렸던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나이. 열린 문 안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 안으로 혼자 걸어 들어가야 하는 나이. 그래서 서른살은 20대의 젊음에 뚜껑을 덮는 듯, 무거움으로 다가온다. (35)
사람은 모두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심리적 거리'를 필요로 한다. 심리적 거리란 타인의 침입과 간섭으로부터 자신의 세계를 보호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자신의 내부에 있는 공격성과 파괴적인 성적 욕구가 밖으로 튀어나가 상대방을 해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한 거리다. 그러므로 자기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하지 못한 사람들은 타인과 가까워지는 것이 두려울 수밖에 없다. 친밀감이란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도 상대와 지속적으로 교감을 나누는 것을 말하는데, 그럴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119)
권태의 시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다. 당신이 권태로워하고 있는 동안 마음 속에서는 오히려 많은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이제까지 쌓아온 경험을 무의식적으로 분석하고 통합하며 소화해내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불안해하지 말고, 권태로운 시간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 시간을 즐겨라. (181)
결혼했다고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심지어 살아하는 사람이 옆에 있는데도 외로울 때가 있다. 또한 싱글이라고 구속당하는 게 없는 것도 아니다. 생계를 유지하려면 돈을 벌어야 하고, 그러면 그 무엇엔가는 구속될 수밖에 없다. 결국 어떤 삶의 형태를 취하든 완전히 자유로우면서도 외롭지 않은 삶이란 없다. 그저 조금 더 자유로우면서도 조금 덜 외로운 삶이 있을 뿐이다. (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