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일기 /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정가 : 11,000원



나는 어떤 학교의 어린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매일 큼지막한 공책에다가 글을 몇 줄씩 쓰십시오. 각자의 정신상태를 나타내는 내면의 일기가 아니라, 그 반대로 사람들, 동물들, 사물들 같은 외적인 세계 쪽으로 눈을 돌린 일기를 써보세요. 그러면 날이 갈수록 여러분은 글을 더 잘, 더 쉽게 쓸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특히 아주 풍성한 기록의 수확을 얻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눈과 귀는 매일 알아 깨우친 갖가지 형태의 비정형의 잡동사니 속에서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골라내어서 거두어들일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사진작가가 하나의 사진이 될 수 있는 장면을 포착하여 사각의 틀 속에 분리시켜 넣게 되듯이 말입니다."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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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이적이 추천해서 읽었던 책이다.
오늘 갑자기 이 책이 다시 읽고 싶어져서 집어 들었다.
오래전 이야기를 꺼내어 글로 정리해야 하는 요즘.
자세히 보고 기록한다고 했는데 놓치고 못 본 것들이 많다.
그러니까 관찰력이라는 것이 어느 한순간 짠! 하고 생기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두고 두고 길러야 하는 것이다.
나도 외면 일기를 시작해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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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여행을 하는 동안의 여정과 그때 그때 있었던 일들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크고 작은 사건들, 날씨, 철따라 변하는 우리 집 정원의 모습,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 운명의 모진 타격, 흐뭇한 충격 따위를 노트에 적어두는 습관이 있었다. '일기'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은 '내면의 일기'와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외면일기'라는 이름을 만들어 붙여 보기로 했다. - 머리말 중


그 중 하나를 살짝 맛보자면. 1월의 첫번째 이야기. 시작부터 흥미진진하다.
매년 1월 초에는 프랑크푸르트 근처, 노이-이젠부르그의 동부, 호이젠슈탐에 있는 중학교 체육관에서 기이한 축제가 열린다. 루프탄자 항공사 여객들이 분실하고 찾아가지 않은 여행가방을 경매하는 것이다. 경찰이 미리 수색하여 그 속에 무기나 마약, 혹은 시체 따위가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 다시 밀봉해 놓은 가방들이다. 반면에 그 가방을 구입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 속에 들어 있는 내용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오직 닫아놓은 가방을 보여준 다음 그 무게만을 공개한다. 그러나 일단 구입이 결정되면 가방은 즉시 개봉되어 낄낄대는 관중들 앞에 그 내용물이 쏟아진다. 그야말로 도깨비상자다. 그것은 또한 사생활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어가는 일이요, 많게든 적게든 내면적이고 시사적이며 잡다하게 뒤섞인 몇몇 물건들을 통하여 재구성한 한 운명의 발견이기도 하다. (p.13)



@ 뎀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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