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미개인 동양의 현자
프레데릭 불레스텍스 지음 / 이향, 김정연 옮김
청년사 펴냄
12,000원 | 335쪽
수많은 자료와 논문이 저자의 설명과 함께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주석과 인용문이 많은 책을 싫어하는 이유로, 참고 문헌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은 내용이 태반인 이 책을 읽는것은 너무 힘들었다.
글씨체도 일반 도서에 비해 너무 작다.
내가 보는 나는 정말 나일까?
네가 보는 나는 정말 나일까?
너와 내가 구분되는 나만의 유일한 특징은 무엇일까?
이 모두에 대한 대답을 나에 대한 정체성이라 할 수 있을것이다.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서, 나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소명을 찾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 자신속의 자아와 보여지는 나의 모습이 때론 충돌하기도 하도, 같이 공감하기도 한다.
우리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성찰의 눈도 중요하지만, 내 자신에 대한 생각은 남의 눈을 통해서 바뀔 수도 있고 또 바뀌어야 한다.
이곳에는 행인이나 여행자를 위한 숙소가 없다. 그러나 여행하는 사람들은 밤이오면 만나게되는 첫번째 처마 밑에 앉을 수 있다. 그 집이 부잣집이 아니라도 그에게 식사가 될 밥과 고기를 준다. 그곳에서 나와 다른 집에서 쉬어갈 수도 있고 그렇게 여러 집을 거칠 수도 있다. (41)
한국은 과거를 부정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자신의 역사를 그토록 잘 알고 있는 민족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전통을 포기하기 않고서도 그토록 훌륭하게 전진한 나라, 오히려 전통이 일상의 모든 행동 속에서 묻어나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따라서 과거와 현재는 매우 가까이 있고, 때로는 병치되거나 겹쳐진다. (302)
* 시작하면서 - 추천의글
타자에 비친 나라의 정체성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롭지만, 내가 나를 규정하고 이해하는데 참고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불가결한 요소다. 나는 나의 주관에 의해서 존재하지만 사회적 존재로서의 나는 남들이 생각하는 나를 떠나서는 환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나 자신에 대한 생각도 남의 눈을 통해서 바뀔 수도 있고 또 바뀌어야 한다. (7)
- 프롤로그
한국은 유라시아 대륙의 저 쪽 끝, 호랑이가 살고 있는 깊고 푸른 험준한 산이 우뚝 솟아 이고,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야생의 검은 강이 유유히 흐르는 동시에, 수천년 전 이 땅에 뿌리를 내린 문화 유산인 사찰에서 베어나오는 고요한 영적 힘과 지혜, 옛 성현들의 휴머니즘 또한 느낄 수 있는 세상 저쪽 끝의 신비로운 나라로서 다가온 한국. 흰색 옷을 입은 무리와 그들의 지혜, 나에게는 전혀 새로운 것인 동시에 강력한 리듬을 갖춘 저 먼 곳의 이미지들. 나와 한국이라는 나라와의 첫 대면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일시적이면서도 강하지만 전적으로 간접 경험에 국한된 이 대면은 마치 앞으로 이루어질, 훨씬 개인적인 발견을 기다리면서 대기실에 앉아 있는 것에 비유할 수 있는데, 그 후 내가 개인적으로 알게 된 한국은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12)
* 첫만남 (13~17세기) - 선의 땅, 극동으로의 여행
세상은 내 머릿 속에 있고 내 몸은 세상 속에 있다. – 폴 오스터 (23)
몽테뉴는 여행을 “우리의 뇌를 다른 이들의 뇌에 문질러 다듬는 것”이라고 정의 했다. (24)
- 한국에 대한 최초의 기록
한국은 지리적 공간 속에서 너무도 먼 곳에 있을 뿐 아니라, 역사적 시간 속에서도 서구인의 상상의 범주를 벗어나는 시대에 속해 있다. 한국인이 살고 있는 땅은 항상 방대한 평원 너머에 존재하는 곳, 어떤 먼 나라보다도 더 멀리 있는 곳으로 묘사된다. 이렇게 한국은 시간적, 공간적 차원에서 이상한 ‘타지’에 속해 있었다. (29)
문화와 자연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19세기 유럽에서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의 주요 특징이 자리잡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은둔자’이다. 은둔자는 자연적 요소와 문화적 요소의 긍정적 측면을 종합한 산물이다. 이것은 18세기에 이르러 ‘자연인’의 이미지와 ‘동양의 현자’의 이미지로 구체화되어 한국이라는 ‘타자’ 인식에서 양개 기둥의 역할을 하게 된다. (30)
- 한국에 대한 구체적 이미지
이곳에는 행인이나 여행자를 위한 숙소가 없다. 그러나 여행하는 사람들은 밤이오면 만나게되는 첫번째 처마 밑에 앉을 수 있다. 그 집이 부잣집이 아니라도 그에게 식사가 될 밥과 고기를 준다. 그곳에서 나와 다른 집에서 쉬어갈 수도 있고 그렇게 여러 집을 거칠 수도 있다. (41)
한국은 이중적으로 극에 위치한다. 한국은 서구의 반대편 극에 위치하는 나라, 동시에 서구인들에게 알려진 동방에서도 극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48)
* 동양의 끝, 한국에의 접근 (18세기) - 중국 속에서 발견한 한국
한국인은 자기 것을 방해 받는 것을 싫어한다. . . 그 밖에 다른 자료들도 한반도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지리적 이유들을 들거나 접근이 금지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준다. . . 지혜롭고 교양 있는 국민들,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독립과 오랜 풍습을 방해 받지 않으려는 국민들, 그리고 산속에서의 자유로운 삶, 사냥을 하며 마법적 효능이 있는 약초를 캐면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은둔해 사는 모습의 한국인 것이다. (66)
'우리와 다른(고립되고 먼) 타자로서의 동양'과 '양면성 (자연과 문화)' 이라는 두 가지 표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66)
- 계몽주의 시대의 한국 이미지
한국은 매우 오래된 나라이면서 매우 먼 나라이다. (71)
볼테르가 본 한국의 특징은 첫째 중국에 대한 종속 관계 그리고 역사적 연대기 측면에서의 한국의 가치 둘째 시간적 공간적으로 극단에 위치한 한국, 셋째 한반도의 ‘깊숙한 곳’이라는 개념, 심오하고 멀고 내면적인 가치 등이다. (85)
* 고요한 나라로의 방문 (19세기) - 제국주의, 선교사 그리고 한국
한국인의 가장 큰 덕목은 인류애를 존중하는 선천적임 마음과 그것을 매일 실천하는 자세이다. (107)
- 문호 개방과 한국학의 성립
아시아 극동의 미래 역사의 축은 한국에 있다. 중국과 일본, 러시아의 각축전에서 누가 패권을 쥐느냐의 문제는 한국의 땅 위에서 결정될 것이다. (122)
한국 우화의 한국적 특징은 우선 배경에 있다. 한국의 산. 그것은 이 모음집을 통해서 볼 수 있는 한국의 전통 문화에서 일종의 배움의 장소로서 사회화된 공간인 전원의 평야와 대칭 관계를 이루고 있다.
한국 우화의 또 다른 특징은 한국적 정서에 있다. 단순한 구조 속에서 이 우화들은 유교적 원칙을 통해 전통 사회의 사회적 일체감을 재확인 하고 있다. 전적으로 개인적인 운명만을 다루는 프랑스 동화들에 비해, 한국의 우화는 사회의 공동체적 균형 유지에 참여함으로써 신화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143)
* 세기 전환기의 한국 체험 (20세기 전후) - 한국에 관한 본격적인 기행문
착한 미개인과 동양의 현자라는 기존의 표상은 서서히 은둔의 왕국과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표상을 형성하는 좀 더 정확한 한국적 재료로 대체되기 시작한다. 이 두 중심이 되는 표상은 도시와 농촌이라는 새로이 등장한 상반된 두 개의 소재에 의해 전개된다. (150)
‘특급호텔’과 급진적으로 이루어진 ‘미국화’ 물결에 열광하면서도 푸대접하는 근대 일본의 구획되고 개발된 장소를 빠져나온 사람이라면, 한국에 첫발을 들여놓는 순간 느끼는 고요함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 . 잠재적인 부와 세계 최대의 해로로 통하는 지리적 입지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 끼여 목소리 한번 제대로 높여보지 못하고, 서양 문명의 흐름에서 멀리 비껴나 있는 ‘은둔의 왕국’은 극동의 모로코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165)
* 동양의 신비와 근대적 현실 (20세기) - 한국 안에서 들여다본 한국
한국인 의상에서 주류를 이루는 색상은 흰색이다.
흰색은 어린 아이 같은 한국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색상이다. 한국인의 의상이라는 소재는 특수성, 향연의 즐거움, 농촌성, 불필요성 등과 같은 요소를 한층 강화하면서 타자로서의 한국인이 지니는 특유의 이국적 정취와 일맥상통한다. (212)
가진 것은 없어도 한국인들은 행복하다. (215)
이 세련되고, 꿈을 꾸는 듯하고, 가난한 민족에게서는 사악함이란 찾아볼 수 없다. 운명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더라도, 한국인들은 ‘웃는 팔자를 타고 태어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는 팔자를 타고 태어난 사람이 있다’라는 속담에서처럼 스스로 위로한다. 옛 선조들의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만을 바랄 뿐인 이들이 튀어나온 이마 위로 먹구름은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230)
- 프랑스 현지의 눈으로 본 한국
한국을 방문한 모든 여행가는 한국인이 몽골족 중에서 가장 유하고 늙고 무디며, 중국과 일본의 속박을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이들의 기록에 의하면 한국인은 생동감을 상실하고 유약하고 부동적이며 지난 세기 이후 잠들어 있는 듯하다고 한다. 이들은 고통에도 기쁨에도 무감각해지고 무심해졌다. . . 한국인들은 누가 떼밀기 전에는 절대로 뛰지 않는다. 이들은 느릿느릿 걷고, 걷는다기 보다는 질질 끌고 다닌다. 뭔가에 부딪히면 넘어지고 누군가 일으켜줄 때까지 기다린다. (232)
중국인은 문명인이다. 이의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들 문명인에게는 딱 한가지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민족이라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한번도 스스로 군림할 줄 몰랐다. 중국은 민족국가가 아니다. (242)
- 예술가의 눈에 비친 한국
새벽의 속삭임을 주의깊게 들어보니, 방망이질을 하며 흰 속옷과 겉옷들을 빠는 여자들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옷을 펴기 위해 다림질을 대신해 다듬이질을 하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빨고 다리고 잇는 것은 하얀 새벽 그 자체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251)
백색은 우리의 영혼에 절대 침묵과 같은 역할을 한다. . . 침묵은 죽음이 아니라 살아 있는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솟아오르는 기쁨으로 가득 찬 무이며, 더 잘 표현하자면 탄생 이전의 무, 시작 이전의 무이다. 빙하기의 대지는 차가운 백색의 모습으로 그렇게 메아리 쳤을 것이다. (254)
동양인의 집은 사방의 바람에 노출되어 있지 않다. 평화로운 작은 골짜기 속에서 그는 완벽한 은거지를 짓고 스스로가 전체의 풍경 속에 조화를 이루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되기를 바랄 뿐이며, 그로부터 분리될 가능성은 염두에 두지도 않는다. 그의 눈은 그의 안정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며 그는 가구를 배치하는 대신 창을 뚫어 놓는다. (265)
* 두개의 한국 (현대) - 타국으로서의 한국
한국은 자신의 민족문화의 핵을 중심으로 ‘중국적 성격’의 갑옷을 자기만의 방식대로 만들었다. 중국 영향권에 완전히 녹아 있는 듯한 환경에서 오히려 고유의 공동체 조직력과 자연에 대한 지배력을 개발했고, 이로 인해 매우 독특한 공간을 만들어 냈다. (281)
북의 성공은 주목받았고 남의 성공은 놀라운 것이었다. 두 국가가 통일이 된다면 중국과 일본 사이에 제 3의 강대국이 탄생하게 될 것이다. 극동지역에서 이 새로운 강대국의 무게는 현재의 지역과 세계 차원의 교류의 틀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것이다. (283)
- 두개의 나라 : 남과북
한국 땅은 이렇듯 잃어버린 천국이다. 이미 20세기 초반의 저자들에게서도 이 주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들은 모두 유년 시절의 땅, 산속의 마을, 그리고 한국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고향’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일제 식민치하, 한국전쟁 그리고 분단으로 인해 멀어져야 했던 고향, 가족과 흩어져 살아남은 이들이 느끼는 향수와 일종의 ‘결핍’의 느낌, 바로 ‘한’이라고 불리는 회한의 감정 말이다. (290)
- 다른 시간 속에 놓인 두개의 한국 : 전통과 현대
한국은 과거를 부정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자신의 역사를 그토록 잘 알고 있는 민족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전통을 포기하기 않고서도 그토록 훌륭하게 전진한 나라, 오히려 전통이 일상의 모든 행동 속에서 묻어나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따라서 과거와 현재는 매우 가까이 있고, 때로는 병치되거나 겹쳐진다. (302)
혁신이나 독창성은 완벽한 도덕적 방패막이 역할을 하는 ‘윗사람’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별로 좋게 평가되지 않으며, 혁신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312)